1945년 8월, 시초는 반전이었다.
마을 축제를 관람하던 한 청년의 퍼레이드 행렬 난입으로 시작된 싸움은 새로운 축제의 발단이 된다. 누군가 채소가게에서 던진 토마토는 경계가 사라진 대열을 빨갛게 물들였다. 온 몸을 덮은 과육으로 끈적이는 몸, 고함과 웃음소리. 사방을 적신 붉은 색은 호전적인 분위기와 농염한 매력으로 전투처럼 격렬한 새로운 축제를 낳았다.

8월만 되면 미치는 도시, 부뇰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도시 부뇰(Bunol).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인구의 두 배가 넘는 2만의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 투우만큼 거칠고, 플라맹고처럼 매력적인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어로 정관사인 ‘La’와 토마토를 뜻하는 ‘Tomatina’가 합쳐진 부뇰의 축제 토마티나는 이곳의 인구와 도시면적을 비교했을 때 거대한 규모를 선보인다. 140톤 분량으로 트럭 일곱 대가 동원되며 5만 유로(약 6,000만 원)에 해당하는 토마토가 도시 한 복판으로 공수돼 곧 벌어질 축제에서 ‘남김없이 버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토마토 전쟁(토마티나의 별칭)’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복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간소하다. 핫팬츠와 슬리브리스 차림 등이 대부분이지만, 탑과 수영복을 입은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폭염 탓이기도 하지만, 토마토와 함께 버려질 옷 때문이다. 물론 떨어지는 토마토의 질감을 피부로 직접 느껴보기 위한 참가자들의 열의도 한 몫을 한다.

전쟁은 단 한 시간
카운트다운과 함께 정오를 시작하는 종이 울리면 준비된 토마토가 거리로 쏟아진다. 눈앞에 펼쳐진 붉은 광경을 두고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토마토를 집어든 사람들의 동작에는 아무런 형식이 없다. 무조건 던지거나 손에 쥐고 내려치는 대상 역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된다.
축제가 무르익어갈 무렵, 더 이상 던질 토마토가 없는 사람들은 토마토로 범벅이 된 상의를 벗어던지거나 상대방의 옷을 찢는 장면을 펼쳐진다. 물론 공식 사이트에는 이러한 행동들을 자제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하고 있지만, 이처럼 요란한 소동을 즐기기 위해 토마티나 축제를 찾는 것이 아닐까.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큰 규모와 인원이지만, 결코 위험하지 않다. 토마토를 쥔 손에는 상대에 대한 어떤 적의도 찾아볼 수 없다. 15분 간격으로 네 차례에 걸쳐 거리로 토마토가 쏟아진 뒤 오후 1시가 되면 ‘종전’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폭죽이 터진다. 이때에는 대기하고 있던 살수차가 등장하며 물을 뿌리며 거리와 사람들을 붉게 물들인 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내린다. 지하 배수관으로 물과 함께 흔적이 없이 사라지는 축제의 잔해들은 보면, 상처와 잔해를 남기지 않는 즐거운 전쟁이라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받게 된다.

이 축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밤새도록 부뇰 광장에서 연주하던 한 남자로 인해 잠을 설친 야채가게 주인이 홧김에 토마토를 던진 것에서 시작됐다는 설, 토마토 폭락에 대한 항의로 농민들이 시의원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마을축제와 청년의 에피소드가 축제의 시작이라는 것이 더 높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기에는 스페인 당국이 축제를 금지하기도 했지만 1957년 토마토를 한 장례식 이후에는 허가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정부가 직접 주도하며 세계적인 문화 관광 상품의 하나로 적극 발전시키고 있다.

140톤 분량의 토마토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서로의 옷을 찢는 상황이 연출되지만 그 안에 적의와 위험은 없다. 토마토의 색감과 향으로만 연출되는, 대상과 주체의 구분 없이 모두가 신선한 엑스터시로 빠져드는 스페인 부뇰의 토마티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체면과 상식,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버려야 한다.
이 축제의 묘미는 대상과 주체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거리의 한 가운데로 나와 토마토를 던지거나 맞으며, 옷을 찢는 소란 속으로 뛰어들어야 토마티나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가 있다. 난장과 축제의 차이는 자신의 참여에 달려있다.

스페인 정보

• 항공이용 : 인천-마드리드 직항 이용
  ( 최근까지만 해도 스페인 여행 시 경유가 불가피했으나, 양국이 체결한 관광협력협정으로 대한항공
  직항편이 새롭게 개설됐다.)
• 비자 : 비자협정 체결로 90일까지 무비자 체류 가능
• 환율 : 1ESP ≒ 745원
• 시차 : 7시간
• 토마티나 축제 : 2007년 8월 29일(수요일)
• 홈페이지 : www.spaintour.com
• 문 의 : 스페인 관광청 (02-722-9131 / www.spain.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