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마도르작업을 거친 아가베(Agave)의 뿌리는 보통은 50~60㎏며 큰 녀석은 최고 100Kg까지도 나간다. 이를 쪄내면 7ℓ-9ℓ 정도의 아가베(Agave) 원액이 추출된다. 처음 찜통에 들어가 20시간 이상을 쪄낸 후 나온 뿌리 밑 둥은 단 고구마처럼 당분이 잔뜩 남아있어 입에 물고 있으면 심심하진 않다. 여기서 나온 액을 ‘풀케(Pulque)’라고 하며 이를 발효시키면서 몇 번의 증류과정을 거치면 알콜 40도의 뒷맛이 강한 ‘데낄라(Tequila)’가 탄생한다. 고대 아즈텍 문명부터 풀케와 데낄라(Tequila)의 기원은 계속되어 왔다. 16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으로부터 넘어온 무시무시한 침략자의 군화에 밟혀 이곳의 찬란한 문명은 사라졌지만 더불어 유럽의 이방에서 들어온 새로운 증류기술이 도입되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원시적 성격을 가진 풀케는 증류 기술과의 접목으로 오늘날의 데낄라(Tequila)로 다시 태어나기에 이른다.

이렇게 태어난 데낄라(Tequila)는 숙성 기간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붙는다. 오크통에 담겨진 채 3개월 미만의 숙성은 데낄라 호벤(Joven), 3-12개월 가량 숙성시키면 레포사도(Reposado), 1년이상 숙성시킨 것은 아네호(Anejo)라 한다. 특히 2~3년 숙성한 레알레스(Reales)는 맛이 진하고 부드러우며 특유의 고유향을 간직하고 있어 목 넘김이 감미로워 속칭 ‘골드 데낄라(Tequila)’로 불리운다. 현지인들이 자주 접하는 호벤이나 레포사도류는 아직 그 맛과 향이 거칠어 이를 없애기 위해 라임과 소금을 이용한다. 라임즙 위에 소금을 뿌린 다음 데낄라(Tequila)를 한 모금 마시고 안주 대신 이 즙을 먹는 음주 습관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오악사카 일대를 지나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에의 황량한 사막을 달리다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아가베(Agave) 농장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는 히마도르가 한창이다. 얼음 송곳마냥 무섭게 내리 쬐는 따가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전통모자인 널찍한 솜브레로를 눌러 쓴 채 묵묵히 아가베(Agave)의 잎을 쳐가며 그 큰 뿌리를 능숙하게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트럭을 따라가 보니 도로 이정표에 ‘데낄라(Tequila)’가 눈에 들어온다.

데낄라(Tequila)는 원래가 지명이름이다. 멕시코 중부 고원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로 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시골 마을이다. 데낄라(Tequila) 공장 또한 세계적 규모의 한 두 곳을 빼 놓고는 다들 중소형태로 운영된다. 용설란의 뿌리가 트럭에서 내려지면 찜통에 들어가 하루를 보낸다. 풀케(Pulque)가 커다란 스테인레스 통에 담겨져 발효를 시작하고 증류기를 통한 몇 번의 절차를 거치면 데낄라(Tequila) 원액으로 나오게 된다. 이는 다시 오크통에 담겨 몇 개월에서 몇 년의 숙성 기간을 지나 저마다의 병속에 담겨 세계로 팔려 나간다.

어둑해진 시골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 한 마을 술집에 들어가 보면 곳곳이 축구 중계와 마을의 대소사로 시끌시끌하다. 그들의 수호신인 태양만큼이나 정열적이며 다혈질적인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옆자리에 앉아 데낄라 한잔을 청하면 라임 조각과 소금 한 접시가 함께 따라 나온다. 멕시코시티와 같은 대도시에서나 있을법한 이방인이 이 시골 구석까지 와서 데낄라(Tequila) 한 잔에 모양새를 잡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충분한 안줏거리요 이야깃거리이리라.

몇 잔이 돌고 나면 어느덧 친구가 되어 버린다. 이맘 때 쯤 등장하는 은퇴를 바라볼 듯한 지긋한 연세의 마리아치 몇 명이 함께 들려주는 애절하다 못해 황홀경까지 빠져드는 ‘La Llorona’는 급기야 자정을 넘을 때 까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수준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만남이 바로 알콜 40도가 넘는 뜨거운 액체가 몸을 타고 내려가면서 독특한 향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데낄라(Tequila)의 매력이자 만국 공용의 ‘술’이라는 코드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멕시코가 자랑하는 세 가지가 있다. ‘데낄라(Tequila)‘, ‘마리아치‘, ‘프리다‘다. 이 셋의 공통점은 화려함 뒤에 가리워진 애환이 곁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데낄라(Tequila)는 그 나름의 정의보다 그에 얽힌 멕시코 토착민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세계를 바라봐야만 한다. 우아하지만 화려하며, 한잔 한잔에 배어 있는 노스텔지어의 애절함이 재현된 멕시칸만의 절대적인 신앙이다.

그것은 멕시코 토착민이 아닌 외지인으로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정수다. 과거의 애환을 뒤로한 채 21세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발 한발 내 딛는 멕시코라는 국가를 움직이는 국민 하나하나의 저녁 술자리엔 이름도 생소한 싸구려 데낄라(Tequila)가 오늘밤에도 그들의 가슴속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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